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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설 - 시집『님의 침묵』:
님의
침묵, 그 사랑의 비밀 _김 상현(동국대 교수)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그는 흔히「뛰어난 승려이자 행동적인 애국지사, 그리고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누구도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이 세 가지 면 중의 어느 하나만으로도 그는
우리 근대사에 있어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 만해와 그의 깊이있는 사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 면모 중의 그 어느 하나를 빼놓아도 안된다.
『님의 침묵』은 1926년 여름 백담사에서 탈고 탈고되었다. 그의 나이
47세 때에 이루어진 이 시집은 원숙한 그의 사상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만주벌판과 일본의 동경을 떠돌아다니던 그의 방랑생활의 경험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열렬히 투쟁하던 철창생활 3년의 그 민족적 분노도 숨어있다.
그가『조선불교유신론』에서 피력했던 불교유신의
의지와, 『불교대전』에서 보여준 불교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십현담주해』에서 도달한 깊이 있는 선(禪)사상이 배어 있다.
먼 곳으로 치닫는 그의 이상과 현실에의 무한한 긍정이 함께 숨쉬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시집이 갖는 전체적인
구성은「님」과「나」와의 뜨거운「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잊지 못할「첫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이별의
슬픔」이 있으며, 애타는「기다림」과 그 뒤에 오는「만남의 기쁨」이 있다.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는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순이와 갑돌이의 사랑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만해(萬海)가 읊는 사랑의 노래는 결코 갑순이와 갑돌이의 세속적인 사랑의
가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님」·「사랑」·「이별」·「만남」·「기다림」·「슬픔」·「등불」·「나룻배」·「눈물」등의 시어는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사용해 온
가장 평범하고 쉬운 단어들이다. 이 시어(詩語)들에는 민족의 정서와 가락이 한껏 묻어있다.
만해(萬海)의 시는 염무웅(廉武雄)의
말처럼「젊은이에게는 사랑의 노래로서, 민족주의자에게는 민족 해방의 염원을 주고받는 암호로서, 종교인에게는 구원의 언어로서 읽혀질 수
있게」되는 것이다. 만해(萬海) 시의 중심 개념인「님」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고 상징된다.
「님」은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진실된 자아(自我)의 진면목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님」은 구제해야 할 중생, 건져야 할 조국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님」의 모습이 별개의 것은 아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에는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고 한『화엄경』의 말처럼「님」이 부처의 모습을 갖건 자아의 모습으로
나타나건 다시 중생의 얼굴로 변하건 간에 그것은 셋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또한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셋인 것이다.「님」이란
시어 속에는 고도의 상징이 깃들어 있고, 또 그것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님」의 모습이『화엄경』에
등장하는 '비로자나불', 곧 우주 그 자체, 진리 그 자체로 상징될 때 만해(萬海)는 그 세계를 향해 가는 참으로 진실한 구도자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그가 만난「님」이「해 저문 벌판에서 길을 잃고 해매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변할 때 그는 다시「등불」이
되고「나룻배」가 되어 下化衆生(하화중생)하는 보살행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집『님의 침묵』에는 보살의 염원으로
가득차 있고 그의 보살사상이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만해(萬海)가 노래하는 첫사랑의 추억은 무엇이며, 그 이별의
슬픔은 어디에 연유하며, 님을 향해 가는 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만남의 기쁨은 또한 무엇인지, 그리고 등불이 되고 나룻배가
되려는 그의 염원은 또한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2. 첫사랑의 님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 사랑의
노래는「님」과의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이별한 슬픔, 이별에서 연유하는 한 없는 그리움, 언제인가는 이루어질 만남에의 기대
등으로 이 사랑의 노래는 이어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이별」과「그리움」그리고 '만남'이라는 사랑의 비밀을 캐기 위해 이별이 오기
전에 있었던 그「첫사랑」의 추억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만해(萬海)는 추억한다.「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그 첫사랑의 꿈을,
그가「맨츰에 만났던 님」그 님과 나눈「날카로운 첫키스」는 그의「운명의 지침을 결정하게 했다」고도 말한다. 도대체 그 첫사랑의 추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그가 첫눈에 반해버린 그「님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어」했지만, 그는「언제든지 적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를 백 번이나 그리려다 끝내 못 그리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님의 얼굴을 못 그리는
것일까? 만해(萬海)가 노래하는 첫사랑의 님은 형상없는 님인 때문이다. 얼굴없는 그 님의 모습을 의인화 시켜서
그려본다.
[ 그의 붉은 입술, 흰 이,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
[ 나는 당신의
눈섭이 검고 귀가 가름한 것도 보았습니다 ]
[ 나는 당신의 둥근 배와 잔나비 같은 허리를 보았습니다 ]
[ 나는
당신의 발톱이 희고 발꿈치가 둥근 것도 보았습니다 ]
[ 연꽃봉오리 같은 님의 잎술 ]
[ 미소에 목욕감는 그 입술 ]
이처럼 만해(萬海)는 님의 모습을 참으로 아름다운 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님은 결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를 못한다. 그는 [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새암파지는 것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작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 번을 지웠습니다 ]라고 토로한다. 님의 모습을 인간화시키려다 못한 만해는
다시금 우주 만상의 모습에서 님의 얼굴과 미소와 손길을 더듬어 본다.
[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 걸음이여 ]
[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
[ 님이여 사랑이여, 어름바다에 봄바람이여 ]
[ 님은 반달의 모습을
하고 나뭇가지 위에 그 얼굴을 내민다 ]
이처럼「아침볕의 첫걸음」·「예오동의 숨은 소리」·「얼음바다의 봄바람」·「나뭇가지위의 반달」그것은 곧 님의
얼굴이고, 숨소리며, 체취로 나타난다.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떨어지는 놀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님의 모습이 우주 대자연의 모습으로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님은 어디에도 그림자인양 따라 다니고 언제라도 나타난다. [ 내가
세수를 할 때면 당신은 대야 안의 가는 물결이 되어서··· ··· 내가 꽃동산에 거닐 때면 당신은 꽃 사이를 스쳐오는
봄바람이 되어서 ··· ··· 내가 잠자리에 들 때면 당신은 고요한 어둔 빛이 되어서 ···
··· ], 어디라도 눈에 보이는 데마다 당신이 계시고 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해가 추억하는 첫사랑의 님은 곧 진리 그 자체, 세계 그것, 우주 그것, 도(道)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비로자나(vairocana)불, 우주에 골고루 넘치는 대지혜 광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님이 침묵하고 있는 까닭도 그 님은 우주 자체,
진리 그 자체인 까닭이다. 그는 진리의 몸, 법신(法身)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 하는 때에 당신의
노래 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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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詩集)내용
☞ '반 비 례']
이처럼 님의 목소리는 웅변이 아니라 침묵으로 표현된다. 만해가 추억하는 그 님은 형상이 없다. 소리가
없다. 형상이 아니고 소리가 아닌 님, 이것은「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는 자, 이러한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사람이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는『금강경』의 말씀과 관련지어 해석해 보면 좋으리라.
만해(萬海)가 노래하는 첫사랑의 추억은
나그네가 고향을 떠나기 전에 경험했던 행복감과 무한한 만족감, 즉 고향집에 있을 때 느껴봤던 안온함 그것이다. 그것은 바로 본래의
깨달음인 본각(本覺)이며, 맑은 샘물 솟아나는 원천(源泉)에서의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자기로부터 소외되기 이전의 기억이다. 또한
그것은 무영(無名)이전의 고향이며, 자성(自性)의 본래적인 참모습(眞面目;진면목)이다. 그리고 여래장(如來藏)이며
법신(法身)이다.
[ 나는 당신의 첫사랑의 품에 안길 때 온갖
거짓의 옷을 다 벗고 세상에 나온 그대로의 발가벗은 몸을 당신 앞에 놓았습니다
]고 노래하는 그의
첫사랑은 분명 아담과 이브의 그 원초적인 사랑과 패턴을 같이하는 것이다. 고향에서 만났던 그 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연인이 아니다.
자기와 자기 자신과 서로 마주보며 미소짓던 그 본래의 모습이다.
3. 첫사랑의 이별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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