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중에서 _'팔상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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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마 싯다르타 : 붓다(buddha, 佛陀) :
고타마(Gotama성) 싯다르타(Siddhartha이름)_석가모니(Sakya Muni :석가족출신의 성자) - 싯다르타는 기원전 약 B.C. 563년 경에 북인도 히말라야산 남쪽 기슭에 있는
카필라성(Kapilavastu)의 석가족(Sakya)의 국왕인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Maya) 왕비의 사이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해산을 위해 마야왕비의 친정인 콜리(Koli)성으로 향하던 도중, 룸비니(Lumbimi)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비람강생상

궁전이 안락과 사치,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했으나 한편으로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Mahaptajapati)에게서 자랐다.

이후 싯다르타는 나이 19세(팔상록:17세)에 야쇼다라(Yasodhara) 공주와 결혼했으며, 한참 후에 아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다.

평소에 사색(思索)을 많이 하던 싯다르타는 궁전이 안락과 사치속에서 성장하며 세상의 고통과 비애로 부터 격리되어 있다가 성 밖의 생활 _자신의 환경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병과 늙음과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사문유관상

불교설화를 표현한 '팔상도(八相圖)'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문(東門)에서 늙은 노인의 모습을, 남문(南門)에서는

병에 시달리는 병자(病者)를, 서문(西門)에서는 장례를 지내는 행상(行喪) 광경을, 북문(北門)에서는 출가수행자(沙門)의 모습이다. 삶의 무상함과 고통, 죽음을 절감하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 모든 것에 비추어 자신의 생활에 공허와 무지를 강하게 느껴 인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의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후 29세 때에 세속(가정과 왕궁생활)을 완전히 버리고 한밤에 궁전을 떠나 출가를 하게 되며, 수행자들을 만나 수행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 경전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쓰여있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열반)을 얻기 위해서였다._중아함경 권56. 라마경
 
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가지가 없었다면 여래(부처님)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_잡아함경 권14. 346경
 
수행을 시작한 싯타르타는 스승을 찾았다. 바가바(Bhagava 고행주의자) ·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 선정수행자) · 웃다카 라마풋다(Uddaka Ramaputta 선정수행자) 등의 스승을 찾아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을 계속 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스승을 구하지 못함을 알고 수행방법을 바꾸게 된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 · 죽음 · 근심 · 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라고 생각하였다._잡아함경 권56. 라마경

유성출가상

스승을 떠나 히말라야 산에서 고행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힘든 고행에 몸은 점점 피폐해져 갔으나 자신의 의문은 해결되지 못하자, 육체적 금욕을 포함한 심한 고행이나 또한 이로 인한 죽음이 자신의 의문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또한 깨닫게 된다.

고행주의를 거부한 싯타르타는 나란자 강가에서 목욕을 한 후 소녀가 공양한 우유죽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게 되는 수행자 싯타르타는 다시 사생결단의 "도를 이루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새로운 독자적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붓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으며,

이렇게 하여 새로운 다짐으로 선정에 든지 7일만에 싯타르타는 그의 의문을 명료하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즉 깨달은 자(覺者)가 된 것이다. 깨달음을 이룬 불타(佛陀) 석가모니는 중생교화를 결심하고 '바라나시'의 녹야원(Migadaya)으로 가서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수행자를 만나 첫 설법(초전법륜)을 하게된다.

초전법륜상

"나는 처음으로 위 없는 정진각을 이룬 뒤에 '나는 누구를 위해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옛날의 그 다섯 비구는 나를 위해 수고하여 내게 이익이 많았다.

내가 고행할 때에 그 다섯 비구는 나를 받들어 섬겼다. 나는 이제 그 다섯 비구를 위해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하리라'고 생각 · · · "_중아함 권 56

녹야원(鹿野園 Mngadava)에서 시작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갈타(Magadha 마가다) 국의 왕사성(Rajagaha)으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 주고자

끊없는 유행을 하였으며, 석가모니 재세시에 그의 가르침이 동쪽으로는 갠지스강 하류, 서쪽으로 지금의 아라비아 해 연안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또한 항상 같이 다니는 제자만 250명이었고,

설법을 하면 팔만여명이 운집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당시 교단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깨달음을 이룬 이후 부터, 기원전 483(?486)년, 80세에 입적할 때까지
45년 동안 석가모니는 종족이나 지위 · 귀천에 차별 없이, 그의 깨달음을 설법하며 많은 사람들의 고통 해소를 위해 끝없는 유행을 계속하였다.

석존의 나이 80세에 지금의 네팔 국경근처인 쿠시나가라(Kusinagara)국의 살라(Sala)나무 숲, 살라나무 사이(사라쌍수)에서 많은 제자들에 둘러 쌓여 조용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쌍림열반상

자기자신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 마라. 스스로를 광명으로 하고 법을 광명으로 삼아, 남을 광명으로 삼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한

모든 생하는 것은 반드시 멸하는 법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힘써 해탈을 구하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인 그 가르침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자비심으로 출발한 출가였으며.!  신통이나 기적(奇蹟)  또는  하늘에 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수행이 아니었으며,

생노병사 · 우비고뇌에 얽매어 사는 현실세계 우리들의 잘못된 생활을 깨우쳐 주고자 그의 깨달음을 전하며 쿠시나가라(Kusinagara)국의 살라(Sala)나무 숲까지 걸으셨던 것입니다.

참고 '출가' ->수행 -> 삶-> 그리고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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